싸나이주부 연재- 나 스스로의 편견
부산대학교에서 늦게 학위를 받고 잘 버티다가 기회가 좋아서 나름 연구교수(계약교수)까지 일을 했던 탓에 나도 나 스스로에게 허세라는 치장이 강하게 남아 있었던 모양이다. 아니면 내 나이 때문이었을까?
사실 8살 차이나는 아내와 결혼해서 살면서 나는 내 나이 또래 사람들과 잘 호흡하지 못한 게 사실이다.
이유인즉, 나이는 비슷할지는 몰라도 의외로 그들과 비슷하지 않은 구석이 있었다.
나는 유년시절, 내 아버지가 어머니에게 가부장적인 태도로 행사하는 모습을 많이 보고 자라왔기 때문에 무겁고 무서운 집안 분위기에 대해 잘 알고 있다. 그리고 남자가 우선이라는 것도.. 그래서 친숙하면서도 매우 싫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을 하고, 함께 아픔을 이겨내고, 함께 치유하며, 함께 행복하려고 노력한 세월을 지나서 볼 때 내가 알던 가부장적 생활은 정말 아니라는 생각을 했다. 어차피 힘들게 살아가는 사람들끼리 만나서 사랑하고 살아가는데 굳이 갑을을 가리며 살 필요가 있나 싶었다. 사실 가부장적인 태도로 살아갈 용기도 없거니와 늘 가정에서 죽어서 살다보니 어떻게 가부장적으로 행동하는지에 대해 잘 모른다. 사실 나는 내 아버지가 매우 무서웠다. 지금에서야 80이 넘은 나이라 그러려니하지만, 최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파블로프 효과였을까? 나는 아버지가 늘 무서웠다. 나이 든 할배가 고함을 지를 때면 최근까지 마음 한 구석에는 숙여야 한다는 외침이 들릴 때도 있었다. 물론 지금은 전혀 아니지만...
내 나이 또래 사람들이 모두 그렇게 가부장적이지는 않겠지만,, 사회생활 할 때 내 나이또래 사람들은 적어도 나를 이해하지 못했다. 나의 생활방식이나 나의 사고방식 모두가 자신들과 틀리다고 반향을 들곤 했다. 가장 많이 들었던 소리가 바로 "왜 그렇게 삽니까?"였다. 나름 학위까지 받고 죽어 사는 모습이 영 맘에 들지 않았던 모양이다.
계약교수였지만 명색이 대학 내 교수라 함부로 말을 못하고 웃으면서 왜 그렇게 사십니까라는 소리를 했었다.
그럼 난 농담삼아 이리 이야기했다.
"하이고 제 아내도 박사다 보니 조금 벅찹니다. 게다가 나이도 어리니 우짭니까?"라고.
그럼 게임 끝..( 내 나이 또래 사람들이 여자가 박사라고 하면 그냥 그러려니 한다. 게다가 어리다고 하면 부러워한다. ㅋㅋㅋ)
오히려 나보다 나이가 훨 많은 분들이 그러려니 하고 이해를 하신다. 지나고 나서 생각해 보니 자신들의 아들 딸들이 사는 모습이 나와 비슷했기 때문이라 짐작해 본다. 의외로 많은 부분을 이해해 주셨고 가끔은 다독여 주셨던 것 같다. 그래서였을까? 어떤 분들은 아직도 내 나이가 자신들의 아들 딸과 비슷하리라 생각하신다. 하지만 내 나이를 말씀드리면 순간 말을 잊지 못하시는 경우를 많이 봤다.
각자의 상황에 따라 사는 모습이 다 다르겠지만 70년대 초반 생의 모습에는 섞이지 못하고, 그렇다고 나이 어린 사람들에게도 섞이기엔 나이가 많은 그런 사람으로 살았던 것 같다.
그래도 잘 살 수 있었던 방법은 하나였다.
그냥 아내에게 맞춰서 사는 것이 해답이다.
그런데 아직까지 벗지 못하는 나 스스로의 편견이 하나 있다.
그건 내 나이또래 사람이라면 모두가 공감하는 문제일텐데... 남자가 일을 하지 않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점이다.
나름 잘 나가던 계약교수 직을 계약기간이 다 되어 그만 둘 수 밖에 없었지만, 여전히 일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 강하다. 그리고 금방 다른 일을 찾아서 일을 하겠지라고 생각을 했었다. 그러나 현실은 사람들 말대로 냉혹한 것일까? 일단 일을 그만두고 새로운 일자리를 찾으려하니 그리 쉽지만은 않았다.
이정도 스팩인데도 일을 하지 못한다는 생각에 스스로가 참을 수 없을 때가 있다. 사실 현실적으로 나의 전공인 "인지과학"으로는 한계가 있다. 특히나 학부에서 박사학위까지 전공이 틀리다보니 매우 치명적이다. 그래도 나름의 경력이 있음에도 나를 쓰이게 할 조직에 들어갈 수 없다는 것 자체가 때론 강하게 자괴감으로 반영되기도 하였다.
나의 이런 마음을 잘 아는 아내는 늘 나에게 응원을 해 준다.
그래도 나는 일을 좀 더해야 하는데,, 아내가 일할 때 내가 좀 더 일을 하면 좀 더 윤택하게 잘 살 수 있을텐데라는 생각을 하며 하루 하루를 지낸다.
가정주부로 산다고는 이야기는 했지만 늘 마음 한켠에는 다시 일을 해야지하는 생각이 서려 있다. 일을 하면서도 지금과 같이 집안 일도 할 수 있는데,,,, 라는 생각도 하면서....
지금 나에게 가장 큰 적은 허울로 남은 나 스스로의 모습을 벗어던지지 못하는 것일까? 그러기엔 내 나이가 참 어중간한 것 같다. 그래도 남들의 생각에 나 자신을 맞춰 살 필요는 없겠지?
매일같이 용기내라며 힘을 주는 아내가 있어서 고맙고,,, 아침마다 애교 떠는 딸이 있어서 다행이다. 아내는 나에게 용기와 사랑을 주고, 딸은 내가 지금 하는 가정주부일에 대한 사명감과 사랑을 준다.
당분간 가족의 힘을 업어서라도 나 스스로의 편견에서 조금은 자유롭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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